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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방송과 책을 어떻게 만나게 할까?

방송과 책을 어떻게 만나게 할까?

 KBS의 「TV 책을 보다」 출연 소회




한국에서 단 하나뿐인 공중파 텔레비전 책 프로그램인 KBS의 「TV 책을 보다」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저께인 12월 24일 오후에 녹화가 있었다. 최근에 다시 완전하게 번역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편이었다. 1시에 도착해서 4시쯤 끝났는데, 인터뷰 말고는 오랜만의 방송 출연이어서 상당히 긴장했던 것 같다. 1월 5일 밤 11시 40분에 새해 첫 프로그램으로 방송된다니 창피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번부터는 프로그램 첫머리에 있던 강의를 없애고, 출연자들이 자유롭게 『돈키호테』를 이야기하는 ‘북 토크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지난달 말 자문회의에 갔을 때 제안했던 것인데, 실제로 그대로 하게 될지는 몰랐다. 그것도 직접 출연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북 토크’라면 흔히 술자리나 카페 같은 데에서 갑자기 화제에 오른 책 한 권을 놓고 공수를 주고받으면서 친구들끼리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함께 읽기’이다. 방청객이 바로 앞에 있어서 그만큼 자유롭지는 않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런 공개 토크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평소 독서력이나 교양이 순식간에 폭로되기에 나중에 편집된 방송을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중간에 삽입된 모노드라마 연극도 보고, 스페인 현지에서 보내온 비디오테이프도 보면서 정신없이 얼버무리다 보니 어느새 방송이 끝나 있었다. 전체 진행을 매끄럽게 끌어 준 김솔희 아나운서의 솜씨와, 필자들이자 후배들인 윤대현, 강유정 두 사람의 가공할 방송 공력이 없었다면, 결코 무사히 마치지 못했으리라. 지나고 나니 새삼 등골이 다 시릴 뿐이다. 

텔레비전에서 책을 소개하는 방송의 가장 큰 어려움은 깊이와 재미 사이의 치열한 긴장을 어떻게 적절하게 통제할 것인가에 있는 듯싶다. 책을 통해 사람을 교양하여 시민적 품성을 길러내는 것이 방송의 지향일 터인데, 책이 다루는 문제를 부각해서 심각히 끌고 가면 계몽적 설교가 되기 쉽고, 주제를 혀에 발라놓고 잽만 부지런히 날리는, 가벼운 이야기로만 일관하면 품격이 사라져 버린다. 게다가 방송 출연자는 카메라나 마이크 앞에서도 어색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이야기하는 고급한 말하기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고층빌딩 사이에 줄 하나를 걸어놓고 장대 하나에 의지한 채 건너가는 곡예사가 생각하는 것은 왜일까? 실제로 방송을 통해서 교양과 재미를 동시에 풀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곡예가 아니라 예술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배가 “방송에서 책을 소개할 수 있는 재능을 갖춘 사람이 드물다.”라고 탄식했는데, 벌써 십여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방송 측에서도, 출판 측에서도 말이다.

사실, 이 부분은 출판에서 더 고민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팟 캐스트의 시대가 열린 것은 오직 이동진이라는 탁월한 교양 엔터테이너가 존재했고, 거의 전업으로 그 일을 떠맡을 수 있도록 과감하게 투자한 출판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의 한국 출판은 어떤 식으로든 이동진과 위즈덤하우스에게 빚을 졌다. 

마찬가지로 책과 방송을 만나게 하려면 역시 출판 쪽에서 이러한 종류의 공적 투자가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동안 출판계에서는 프로그램 문제든, 인력 문제든 방송 쪽에서 알아서 하리라고 생각해 ‘방송에서 책을 다뤄야 한다.’는 원론적이고 윤리적 차원의 촉구만 있었을 뿐,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이를 함께 고민하지는 못했다. 이와 관련한 담론이 거의 형성되지 못한 것을 보면 익히 그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방송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또 출판이 콘텐츠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복합화해 가는 형세를 고려할 때, 출판은 ‘북트레일러’와 같은 자체 제작 콘텐츠를 통해서든, ‘온북티비’ 같은 내부 채널을 통해서든, ‘유투브’나 ‘아프리카 TV’ 등과 같은 외부 채널을 통해서든, 책과 방송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방송에서 책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전에 말이다. 《기획회의》 같은 데서 일단 특집으로 다루어 보면 어떨까 싶다.

어쨌든 KBS측의 호의로 1월 19일에 방영될 「잠의 사생활」 편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문학이 아니라 과학은 또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걱정부터 먼저 앞선다. ‘잠’은 우리 삶의 일부이자, 현대 문명의 첨예한 주제이다. 현대 사회는 인간의 타고난 생체 리듬을 파괴하면서 잠의 세계마저 식민화한다. 잠을 빼앗는 사회, 그야말로 ‘잠 도둑’인 것이다. ‘24시간 사회’ ‘편의점 사회’ 등 현대 문명을 가리키는 수많은 프레임들이 여기에서 나왔다. 이 책을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막막한 것을 보면 역시 방송과 책을 만나게 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