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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소설 / 희곡 읽기

모험과 긍정의 인간, 돈키호테(한겨레 기고)

《한겨레》 출판면에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라는 코너가 있다. 이곳에 글을 맡아서 세 번 쓰게 되었다. 첫 번째로 고른 책은 최근에 다시 완독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박철 옮김, 시공사, 2004)였다. 아래에 옮겨 둔다.



지난해 5, 편집자로 일한 지 스무 해째 된 것을 기념해 아내와 함께 스페인을 여행했다.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이 세속의 번뇌를 증발시키고, 늦도록 들지 않는 밤과 온화한 바람이 산책을 한없이 부추기는 가운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같은 질문에서 편집이란 무엇인가같은 질문까지 온갖 의문을 떠오르는 대로 풀어 놓고 마음껏 생각을 즐겼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라는 말로 정리했는데, 내 인생은 어떤 말로 요약할 수 있을까. 그러다 한 문명의 거대한 성취이자 허무의 상징인 알람브라 궁전 뜨락에서 문득, 답 하나를 찾았다. “읽기 위해 살다.” 읽기가 내 전부였던 것이다. 학교 때 글을 썼던 것도, 사회에 나와서 책을 만들었던 것도, 앞으로도 계속 이 길을 가려는 것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라서였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 흥취를 잃지 않고자 나는 스페인 책들을 계속 읽었다. 그중에서 백미는 역시 『돈키호테』였다.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내용은 크게 기억과 다르지 않지만, 세부의 요철들은 글자와 문장이 마법이라도 부리듯 달라진다.

돈키호테의 인생은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모험하기 위해 살다.” 돈키호테가 첫 번째 가출에서 돌아왔을 때, 조카딸이 그를 말리면서 말한다. “있지도 않은, 밀가루보다 더 좋은 것으로 만든 빵을 찾는답시고 세상 방방곡곡 쫓아다니지 말고 집에 계세요.”

모험은 대개 소박한 말에 걸려 넘어진다. 그래서 세상은 더 빨리 좋은 것으로 가득 차지 않는다. 돈키호테는 말한다. “평온한 일상, 안락한 삶, 휴식은 비겁한 귀족을 위해 있는 것이고 모험, 불안정한 생활, 결투 등은 편력 기사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일상의 비겁으로부터 벗어나 위험한 모험, 위대한 업적, 용감한 무훈이 기다리는 황야로 걸음 떼지 않는 한, “철의 시대황금의 시대로 이행하는 변화의 운동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개인적 차원이든, 사회적 차원이든 말이다.

돈키호테』는 모험의 책이자 변화의 책이다. 광기와 희화는 그 본질이 아니다. 그는 기사 됨을 통해 씻어버려야 할 불명예, 바로잡아야 할 부정, 고쳐야 할 무분별한 일, 개선해야 할 폐단과 해결해야 할 부채로 고통 받는 현실을 뛰어넘어 과감하게 미래를 선취한다. 광기는 그 안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네가 나와 더불어 편력한 지도 꽤나 되었건만 겉으로 보기에는 편력 기사들이 하는 모든 일이 망상적이고 어리석으며 미친 듯해 보여도 사실은 전혀 아니라는 것을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이냐?”

인류의 위대한 업적은 망상적이고 어리석으며 미친 듯해보이는 일을 하려는 데에서 나왔다. 내면에서 한없이 퍼올리는 긍정의 사유 없이 이는 도저히 가능할 수 없다. “시인들이 예찬하는 모든 여인이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 시의 주인공으로 삼으려고 가공해 낸 인물로, 이는 시인들이 스스로를 사랑에 빠진 남자로 그려내고 싶어서였다.” 자신을 어떤 인간으로 그려내느냐에 따라 인생은 결정된다. 돈키호테는 영원히 이 사실을 떠올리도록 유혹한다. 그래서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243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