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SNS 민주주의(?)의 종언

지난 며칠 동안, 전 세계가 미국의 몰락을 생생히 지켜보았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거짓에 부추겨진 폭도들이 의회를 점령해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정권 교체를 부정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로써 선연히 파산했다.

미국을 망가뜨린 것은 트럼프 개인이 아니다. 리더십은 중요하나, 한 사람의 저열한 품성에 모든 원인을 돌리는 것은 지적으로 무책임하다. 미 의회를 점거한 ‘반역자들’은 ‘선거 부정’이라는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가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몰려든 평범한 시민들이다. 대부분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들일 것이다.

이들을 극단주의자로 만든 진짜 범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정확히 말하면 가짜뉴스를 확산하고 증식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다. 이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를 통해서 ‘진짜 정보’를 얻고, ‘유익한’ 대화를 나누며, 참여 인증샷과 동영상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엘리트 기레기들’의 ‘기만과 불의’에 맞서는 ‘애국시민’이 되었다. SNS는 상식을 갖춘 시민들을 편향된 생각에 몰입하는 ‘빠들’로 타락시킨다.

엘리 프레이저의 『생각조종자들』(알키, 2011)에 따르면, 현대사회에서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필터’이다. 알고리즘은 누적적 추적과 무한한 감시를 통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그 취향에 들어맞는 것만 걸러서 추천한다. 또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을 ‘친구’로 연결해서 만족감을 높이고 소속감마저 부여한다.

추천 종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 관련 프로파간다나 캠페인, 인종주의 같은 편견에 물든 사상, 거짓 사실을 담은 뉴스 등 아무것도 가리는 게 없다. 이용자가 선호하고 트래픽이 올라가면 그뿐이다. 프레이저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과도하게 걸러진’ 정보가 가지는 심각한 편향과 이것이 야기하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을 가리켜 ‘필터 버블’이라고 한다.

필터 버블에 갇힌 인간은 보기 좋고 듣기 좋고 먹기 좋은 정보에 둘러싸인다. 감각이 비슷하고 생각이 맞아떨어지는 사람들만 주변에 가득 찬다. 한마디로, 필터 버블은 인간을 메아리방에 가둔다. ‘좋아요’ ‘하트’ ‘댓글’ 등 긍정적 피드백을 통해 비슷한 생각, 똑같은 소리를 한없이 반향하면서 편향을 북돋우고 신념을 강화 학습시킨다. 메아리방에서 많이 대화하고 자주 소통할수록 인간은 광신의 노예가 되고, 모임은 빠들의 패거리로 변질된다. 결과는, 트럼프의 미국이 보여 주듯, 민주주의의 붕괴이고 시민 사회의 파멸이다.

인간은 낯선 것과의 조우를 통해서만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변하고, 민주주의는 다른 생각을 경청하고 대화하며 수용하는 과정을 겪을 때에만 작동한다. ‘좋아요’의 메아리에 빠져, 사실을 사실대로 수용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지고 정치가 이들에 의해서 좌우될 때, 사회는 반드시 위기에 빠진다.

오늘날 한국사회 역시 ‘필터 버블’의 위기에 빠져 있다. 빠들의 메아리 정치, 패거리 민주주의의 징후가 완연하다. 트럼프의 미국에서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아마도 재앙의 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엘리 프레이저의 『생각조종자들』(알키, 2011)

 

=====

<매일경제> 칼럼입니다.

자신의 사유에 맥락을 만들어 주는 실천, 즉 독서, 대화 등 없이 어떠한 민주주의도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