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아내와 앞날을 이야기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세상의 앞일이나 우주의 미래 같은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고, 주로 ‘100세 인생’을 살아갈 둘의 앞날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때때로 미세먼지로 숨 막혀 죽지 않기를, 때때로 전쟁광들에 맞서 평화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 절반을 갓 넘긴 입장에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히 살고 평안히 스러지려면, 노후 경제문제 등 사적으로 건사할 일도 한둘은 아니다.
수명과 관련해 인간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공중보건의 지속적 확산과 의학의 비약적 발달로 기대여명이 실제로 100세가 될 가망성이 높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100세를 최소수명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이 한 세기를 살아가는 사회를 인류는 경험하지 못했다. 학교 교육, 직장 정년, 노후 연금, 의료보험 등 현재의 사회 시스템은 인간 수명을 70~80세 정도로 가정한 상태에서 설계되었다. 100세 시대에 적합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평생학습을 의무화하고 연령차별(정년)을 폐지하는 등 시스템 전반의 혁신이 없다면 사회 전체가 서서히 파멸에 이를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도 노년의 삶이 이토록 길어질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탓에 뒤늦게 호들갑을 부리는 중이다.
린다 그래튼 & 애드루 스콧의 『100세 인생』, 안세민 옮김(클, 2017)
『100세 인생』(클)에서 린다 그래튼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나이에 상관없이 살아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면서 노후 대비의 초점을 옮길 것을 주문한다. 수명이 짧을 때에는 부동산이나 예금 등 유형자산을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100세 인생 시대에는 지식・기술・인맥・평판 등 나이 들어서도 일을 만들어 주는 생산자산이나 건강・우정・사랑, 일과 삶의 균형 등 신체적・정신적 행복을 유지해 주는 활력자산이 더 중요하다. 여기에 덧붙여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건강한 자기인식,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 주는 다양한 네트워크, 신선한 경험에 열려 있는 학습능력 등 변형자산도 갖출 필요가 있다. 삶이 얼마나 길어질지 미지수에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므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꾸준한 자기 갱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튼 교수에 따르면, 배움-노동-은퇴로 이루어진 3단계 인생 사이클은 저물고, 배우고 일하고 휴식하는 것을 수시로 반복하는 ‘다단계 인생’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시대에 유형자산은 언젠가는 소진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기껏해야 돈을 만들어 줄 뿐이다. 그러나 생산자산, 활력자산, 변형자산 등 무형자산은 힘이 다하는 날까지 일을 이어주는 동시에 삶의 보람까지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노후를 생각할수록 돈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좇아야 한다. 나이 들어 필요한 것은 명예, 사랑, 우정이라고 한 셰익스피어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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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에 한 주에 한 번 쓰는 칼럼, 이번 주에는 아내와 함께 읽고 있는 린다 그래튼 교수의 책 ‘100세 인생’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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