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雜文)/공감과 성찰

공자의 인생 자술(自述) [세계일보 칼럼]

편집마왕 2015. 5. 16. 21:05



공자의 인생 자술(自述)은 아주 짧다. 고작 서른여덟 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공자는 아주 장수했다. 가장 아끼던 제자인 안회(顔回)와, 과정(過庭)의 가르침을 베푼 아들 공리(孔鯉)가 먼저 죽어버리는 참척의 슬픔을 견뎌야 할 정도였다. 햇수로는 70년이 넘고, 날수로 따지면 2만 6000여 일에 이른다.

전란이 끝없이 이어진 춘추 시대, 비교적 낮은 신분인 사(士)로 태어났으나 세상을 구제하려는 큰 뜻을 품고 천하를 편력한 삶이었다. 정말로 파란만장했다. 애제자로부터 “선비가 굶주리는 일도 있답니까?”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고, 세상에 초연한 채 숨어 사는 은자로부터 “상갓집 개”라고 비웃음당하기도 했다. 사연을 모조리 글로 옮기면 수십 수레는 족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는 인생의 자잘한 굴곡을 전하는 데 마음 쓰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는 오욕으로 얼룩진 비참한 삶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단순한 가치를 선택했다. “나는 열다섯에는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는 섰고, 마흔에는 혹하지 않았고, 쉰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고, 예순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에는 마음 바라는 대로 좇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읽을 때마다 머릿속이 환해지는 글이다. 단정한 아름다움과 간결한 강인함을 함께 갖춘 명문이다. 자기 삶의 가치를 선연히 아는 사람이 쓴 글이다. 자전이지만 권고이다. 자질구레한 세부에 연연하지 말고, 인생의 커다란 줄거리부터 바로 세우라는 준엄한 규탄이다. 

그래서 이 문장은 공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의 형식으로 쓰였지만, 한 문장 한 문장 끊어 읽을 수는 없다. 한 문장 한 문장이 한 단계의 완결과 출발을 뜻하기보다 그 단계의 지속과 연장을 포함하는 확장의 언어로 쓰인 까닭이다. 가령, 열다섯 어린 나이에 배움에 둔 뜻은 일흔 살까지도 계속 품어서 간직해야지 중도에 폐지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나이에 따른 가치의 대체와 교환으로 읽기보다는 나이 들수록 더욱 갖추어야 할 가치의 확대와 증식으로 읽는 게 옳다.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지지(知止)’, 즉 부족하면 채우고 채웠으면 거기에 머무르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공자의 인생 자술은 처음 한 글자인 ‘지(志)’로 줄어든다. 지(志)는 공자가 인생이라는 땅에 심은 감자 한 조각이다. 오월 맑은 햇빛에 푸르게 일어서는 이파리나 화려히 피어나는 하얀 감자 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감자의 진짜 생은 지하에서 진행된다. 간난(艱難)을 토양 삼고, 신고(辛苦)를 거름 삼아 땅 밑으로 줄기를 내뻗으면서 적당한 때를 맞으면 굵게 덩이지면서 양분을 축적한다. 

공자의 인생도 그러했다. 고국인 노나라에서 대사구(大司寇)라는 관직 생활을 짧게 했을 뿐 그의 사회생활은 불우했다. 세상을 구할 뜻을 품고 고국을 떠나 온 세상을 떠돌았으나, 어디에서도 그를 등용할 군주를 만나지는 못했다. 동쪽 집에서 잠자리를 구하고 서쪽 집에서 밥을 빌어먹는 세월이 헛되이 지나갔을 뿐이다. 만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기르는 데 전념한 후에야 비로소 생활이 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그의 인생은 ‘배움’에 뜻을 둔 데에서 시작해서 ‘배움’을 전하는 데에서 끝맺은 셈이다. ‘지(志)’의 내포와 외연을 끊임없이 확충해 가면서 평생 일심으로 살아간 것이다.

중간고사 때 학생들에게 내준 과제는 “나는 어떻게 세상에 가치 있는 인간인가?”라는 질문이다. 스스로 자기 삶의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48쪽의 작은 책으로 만드는 간단한 과제였다. 처음엔 당황하던 학생들이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점차 깊이를 획득해 가는 걸 보니 기특하기만 하다. 무엇을 질문하고 어떤 뜻을 품었는가에 따라서 인생은 달라진다. 인생의 한 글자를 세우고 정진할 수 있다면 어떤 날도 괴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공자의 인생 자술이 우리에게 전하는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