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서평/책 읽기

조선시대 편집 이야기

편집마왕 2025. 4. 14. 00:18

‘이미’ 있었지만 ‘아직’ 없었던 일을 만들어내는 일이 ‘편집(編輯)’이다. _엄윤숙, 『아주 오래된 편집 매뉴얼』(사유와기록,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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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 대한 좋은 정의다. 매 학기 초 학생들한테 비슷한 정의를 가르친다.

편집은 모아서 배치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이다. 

어젯밤부터 푹 빠져 읽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은 언젠가 한번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책이다. 나는 쓰는 일보다 읽는 일을 더 좋아하니까, 이렇게 누가 대신 써 주면 고맙다. 

우리 옛 선인들의 글에서 편집에 관련한 말들을 가려 뽑아 현대어로 옮긴 책이다. 

각 꼭지의 편제는 다음과 같다. 제목 / 저자 소개/ 간략한 글 소개/ 본문 / 편저자 단상

옛 선인들의 글과 편저자의 단상이 짝을 이룬다.  고전 관련하여 여러 책을 이미 낸 바 있고, 편집자 생활도 짧게 경험한 바 있어서 두 글을 하나로 꿰는 솜씨가 아주 억지스럽지 않다.

옛글은 기(記)나 의(議) 같은 곳에서 뽑아 단정하고, 단상은 아포리즘이 넘칠 정도로 온도가 높다. 이건 아마도 대중적 감각인 듯싶다. 나라면 단상 쪽을 더 간결하고 건조하게 썼을 테다.

어쨌든 편집자들이 책상에 올려두고 때때로 들추어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기 좋은 책이다.

송준길 왈, “우리글로 번역한 언해 중 고쳐야 할 방언이나 저속한 표현이 하나둘이 아니오니 아울러 정밀히 교정하여, 공부할 때 의심스럽거나 막히는 곳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 훈련도감과 호남에서 만든 두 가지 본(本)의 『소학언해』는 주석이 모두 작은 글씨로 되어 있기에, 자세히 헤아리고 두루 살피는 데 불편함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큰 글씨로 간행하는 것이 더욱 합당할 듯합니다.”

잘못된 번역을 바로잡고, 저속한 표현을 골라내 글을 다듬고, 서체와 글자 크기를 정하는 등 오늘날 편집자의 일과 별 차이가 없다. 책이 있는 한, 편집이 없을 수 없으니 이는 당연하다. 

엄윤숙, 『아주 오래된 편집 매뉴얼』(사유와기록,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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