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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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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의 시대 현대 문명은 가벼움에 홀려 있다. 가벼움은 이 시대의 이상적 질서다. 『가벼움의 시대』(문예출판사)에서 프랑스 사회학자 질 리포베츠키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가벼움을 “제도적으로 합법화하고 사회적으로 일반화하는 시대”를 살아간다.‘슬림’ ‘심플’ ‘홀로’ ‘쿨’ ‘큐트’ ‘초소형’ ‘초경량’ ‘초간편’ 등 우리를 둘러싼 세계 전체가 가벼움을 찬양한다. 가볍고 얇고 작고 짧은 물건들은 우수함의 증거다. 다이어트와 피트니스는 신체의 궁극적 관리 기술이 된다. 가벼운 몸, 즉 날씬하고 빼빼한 몸매의 생산은 이 시대의 지상명령이다. 혈연이라는 운명의 형식으로 묶인 가족마저 점차 가벼워진다. 대가족은 핵가족으로, 핵가족은 1인 가구로 세포분열 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6년 말 1인 가구가 540..
네티즌 수사대가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이유 제니퍼 자케의 『수치심의 힘』(책읽는수요일, 박아람 옮김, 2017)을 가볍게 훑어 읽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수치라는 감정이 어떻게 생겼으며,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인간의 수치심을 어떻게 활용할까를 보여 주는 책이다. “언어가 생기자 우리는 더 이상 상대의 행동을 직접 보고 판단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은 가십을 이용하여 사회적 지위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명성과 수치 제도가 더욱 활성화되었다. (중략) 가십은 언어적인 수치 주기를 통해 당사자가 협동할 것을 기대하는 행동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26쪽)언어는 단지 소통 수단만은 아니다. 그것은 규율이 사회 속으로 퍼져나가는 통로이자 촉매이다. 사람들은 뒷담화를 통해서 사회 전체를 위해서 기여한 사람은 명예를 주고, 사회 전..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편집을 생각하다 “내린다는 느낌보다는 공기 중에 가득한 느낌의 가랑비.”새벽에 일어나 이케자와 나쓰키의 『문명의 산책자』(노재명 옮김, 산책자, 2009)를 읽다가 밑줄을 그어 두었는데, 예감일까, 하루 종일 이런 비가 홍동에 내렸다.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공기는 맑았던 어제와는 달리 무겁고 축축하지만, 힘껏 집중하지 않으면 비가 내린다는 것을 알아채기 어렵다. 이곳의 소리는 풍부하다. 멀리에서 끊임없이 산비둘기가 운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어루만지는 소리, 엄마를 따라 온 아이들 웃음소리, 건너편 도서관 회의실에서 중학생들이 토론하는 소리도 가끔씩 창턱을 넘어온다. 길 건너 논에서는 벼들이 낟알을 실어 고개가 휘어지기 시작했다. 초록에서 노랑으로 들의 색깔이 막 바뀌려는 참이다. 음력으로 표시하는 자연의 절기는 정확하..
권력의 말과 문학의 말 말의 정의 -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태욱 옮김/뮤진트리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송태욱 옮김, 뮤진트리, 2014)는 오키나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후쿠시마를 문학적 에세이의 형태로 사유한다. 이 세 장소는 “인간의 교만 위에서 성립한 지금의 삶”의 뿌리와 귀결을 드러내는 중요한 공간적 상징이다. 태평양 전쟁 말, 오키나와에서는 강요된 자결이 있었다. 기울어져 가는 전세 속에서 일본군은 도카시키지마 섬 주민에게 ‘집단 자결’을 강요하고, 군대가 건넨 수류탄으로 300명 이상이 자결하고 그러지 못했던 주민들은 한낱 어린아이까지도 가족이 도끼나 낫, 또는 손으로 죽인 사건이 있었다.(오에는 이 사건을 고발해 쓴 『오키나와 노트』 때문에 소송을 당했고, 결국 무혐의로 승소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밀란 쿤데라 전집을 펴내면서 다음 주에 밀란 쿤데라 전집 열다섯 권이 드디어 완간된다. 1988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계간 《세계의 문학》에 실린 이래 스물다섯 해 만이다. 프랑스어권 바깥에서는 세계 최초로 출간되는 전집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전집을, 그것도 외국 작가의 전집을 간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미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플레야드판 전집이 완간된 데다, 밀란 쿤데라가 19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에, 더 나아가서 한국 문화에 끼친 공헌을 생각하면 그리 무리한 것도 아니다.밀란 쿤데라의 문학은 처음 번역 출판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지금 글을 쓰는 한국의 어떤 작가도 결코 그에게 생각의 물줄기를 대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때로는 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