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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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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비오는 한밤중에 다리를 건너는 것 건너는 사람 여태천 정말로 뭔가를 보지 못할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일 뿐 사람들은 어서 여기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칠흑의 이 밤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누군가 또 다리를 건너나 보다. 이런 밤이면 인기척도 무섭다. 폭우로 불어난 물 때문인지 재난방송이 간격을 두고 울린다. 선한 의도가 때론 누군가의 목줄을 죄고 지금의 기쁨이 십 년 뒤의 후회가 될 수도 있는 법. 떠나려는 이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흙탕물은 단비가 되어 어딘가에 내리기도 하겠지만 이번 삶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텅 비어 버린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맞는다. 다리를 건너는 저 사람도 필경 우산이 없을 것이다. 젖을 대로 젖어서 건너는..
메타포적 인생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민음사, 2004)에서 마을 청년 마리오 히메네스가 파블로 네루다에게 묻는다. 작품 배경은 1970년대 초 칠레의 이슬라네그라.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1943년부터 정착해 살았고, 현재 그의 무덤이 바다를 바라보는 어촌 마을이다. 마리오는 네루다한테 온 우편물만 배달하는 사람으로 특별 채용된다. 열일곱 살 마리오는 이 일을 계기로 처음으로 네루다의 시집을 읽기 시작한다. 시를 읽으면서, 또 네루다와 대화하면서 청년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독특함을 깨닫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사실대로’ 세계를 보는 것과 ‘제대로’ 세계를 보는 것은 다르다. 비의 물리적 실체는 하늘에서 떨어지..
출판의 미래, 연결에 있다 “디지털 경제에서 우리는 자신이 일하는 영역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초예측』(웅진지식하우스)에서 프랑스의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이 말한다. 일반적으로 ‘규모의 경제’는 물리적 재화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정의한다. 대량생산을 통해 생산원가를 낮추고 대량소비를 유도해 가격을 파괴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원리다. 저렴하고 잘 훈련된 대량의 노동력, 큰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싸고 넓은 토지, 부채를 포함해서 동원 가능한 대규모 자본 등 세 박자를 갖추면 비용을 낮추고 시너지를 높여 규모의 경제를 이룩할 수 있다. “재벌이라도 출판을 잘할 수는 없어. 출판은 돈으로 하는 게 아니야.” 고(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은 늘 말하곤 했다. ..
‘동네서점×쏜살문고 프로젝트’ 이후, 민음사는 동네서점에서 어떤 일을 기획하고 있나 작년 여름에 진행했던 ‘동네서점×쏜살문고 프로젝트’ 이후, 민음사는 동네서점에서 어떤 일을 기획하고 하려고 할까? 첫째,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신구간 이벤트, 저자와의 만남, 에디션 제작 등과 같은 마케팅 활동들을 작은 서점에서도 꾸준하게 해나가면서 일종의 마케팅 루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중략) [독립서점만의] ‘히트상품’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잡을 수 있었다. 이는 동네서점에서 마케팅을 기획하려는 마케터에게나 동네서점 운영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서점인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둘째, 독자들이 동네서점을 찾는 이유인 ‘취향의 발견’과 ‘책을 활용한 다양한 경험’을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들을 서점들과 함께 고민하는 일이다. 더불어 서..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건져올린 기쁨의 언어 배수연의 첫 시집 『조이와의 키스』(민음사, 2018)는 폭력으로 가득한 슬픔의 세상에서 ‘기쁨’의 언어를 발굴하고 싶어 하는 애처로운 마음을 담았습니다.세상의 표상은 더럽고 위협적입니다. “헝클어지는 머리칼/ 머리를 쓰다듬는 커다란 손∥ 엄살쟁이야/ 주사 맞기 싫으면/ 선생님 뺨에 입을 맞춰 봐” 시 「병원놀이」의 한 구절입니다. 이 땅의 여자들이 흔하게 겪는 일상을 생생하게 포착합니다.하지만 시인은 세상의 폭력에 지지 않습니다. 폭행하는 세계 속에서 시인은 곳곳에서 자아의 기쁨을 흩뿌리고 또 수확합니다.“너의 아름다운 몸이 침대 위에서도 웅크려야 하는지/ 나는 와락 눈물이 안기는 걸 뿌리친 채로/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눈썹을 꺼내 네 발에 시를 썼어/ 아니 그건 코란이나 성경이었을지도 몰라”이 시집..
미식이란 무엇인가 한 달에 한 차례, 《대전일보》에 쓰는 칼럼입니다. ‘미식의 시대’입니다. 먹방이 인기를 끌고, 이른바 맛집이 넘쳐나죠. 하지만 맛이란 무엇일까요. 명절을 맞이해서 집집마다 음식이 푸짐하겠죠. 맛의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식이란 무엇인가 미식의 시대다. 맛집 탐방은 이 시대의 성지 순례요, 먹방은 이 시대의 복음이요, 음식 평론가는 이 시대의 사도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알쓸신잡)이라는 이름의 하찮은 정보 목록에도 음식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무엇이 맛있는 것인가? 맛의 뿌리는 향토에 있다. 산과 들과 강과 바다로부터 얻은 재료에 갖은 정성을 다하면 충분하다. 흔히 ‘고향의 맛’이라 불린다. 뮈리엘 바르베르의 장편소설 『맛』(홍서연 옮김, 민음사, 2011)에 따르면, ..
비틀린 삶의 축을 바로잡아줄 길잡이 《주간동아》 1126호(2018. 02. 14, 60~61쪽)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해 나온 책들 중에 연휴를 맞이해서 읽을 만한 책을 골라서 소개했습니다. 비틀린 삶의 축을 바로잡아줄 길잡이연휴에 꼭 손에 들어야 할 8권 책을 왜 읽는가.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지금에야 굳이 책일 까닭도 없다. 온라인 공간에는 평생 봐도 다 못 읽을 자료와 기록이 이미 즐비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생겨나는 중이다.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좋은 스승을 좇아 서점이나 도서관 등에서 열리는 강좌나 강연에 참석해도 좋고, 바란다면 여러 가지 동영상 강의를 이용할 수도 있다. 내용이 충실하고 수준 높기로 정평 난 강의만 챙겨도 이번 생을 채우고도 남는다.하지만 지식과 정보의 습득 말고 책을 읽는 더 깊은 이유..
'긴글 읽기 싫어요'…단편 넘어 '초단편' 인기 - 예스24 단편 판매율 매년 급증…지난해 전년比 66% 증가- 단편 넘어 원고지 30매 이하 초단편 찾는 독자도 크게 늘어- 스마트폰 보급·온라인 콘텐츠 증가로 “읽는 것”에 부담 커져 [이데일리 채상우 기자] “긴 글을 보면 스크롤을 내려버려요.” 직장인 김찬샘(33) 씨는 장문의 글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기사를 읽을 때도 앞에 세 줄을 간신히 읽고 댓글로 눈을 돌린다고 한다. 스마트폰 사용률이 증가하고 온라인콘텐츠가 쏟아지면서 김 씨와 같이 ‘장문 문맹’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출판계도 그런 영향으로 단편의 인기가 급증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단편 판매량은 전년 대비 66% 증가했다. 최근에는 단편을 넘어서 ‘엽서소설’ ‘초단편’으로 불리는 200자 원고지 30매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