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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쩌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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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9] 유어예(游於藝) ―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7-6 공자가 말했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익숙하고, 인(仁)에 기대고, 예(藝)에 노닐리라.” 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연스럽고 자유스럽다는 뜻이다. 이 장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에 대해 성찰하도록 만든다. 자유는 어떤 일을 하는 데 방해받지 않는 것이다. 외부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방해는 한 사람이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힘이다. 자연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사회로부터 올 수도 있다. 배움이란 결국 자유로워지기 위한 기술이다. 리쩌허우는 말한다. “숙달하여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자유와 즐거움을 얻는다.”이을호는 이 장이 “도(道)-덕(德)-인(仁)-예(禮)의 종합적 구조를 형성하였음”을 가리킨다고 본다. 천..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7] 호학(好學) _ 배우기를 좋아하다 5-28 공자가 말했다. “열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처럼 충성스럽고 신의 있는 사람이 거기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이 장에 대하여 주희는 아름다운 자질은 얻기 쉬우나 지극한 도는 듣기 어려우므로, 배움이 지극하면 곧 성인이 될 수 있고 배우지 않으면 시골뜨기에 한낱 머무를 뿐이므로 사람은 배움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약용은 이는 공자가 자신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배움을 좋아하는 것이 고귀한 일임을 설명한 뜻이라고 했다. 『논어』 전체에 걸쳐 충(忠)과 신(信)은 군자가 되려는 이들이 반드시 힘써야 하는 덕목으로 칭송된다.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미덥기만 해도 이미 훌륭한 성품이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5] 노자안지(老者安之), 붕우신지(朋友信之), 소자회지(少者懷之) _노인들은 편안히 모시고, 벗들은 믿음으로 대하며, 젊은이들은 품어 주고 싶다 5-26 안연과 계로가 공자를 모실 때 일이다. 공자가 말했다. “각자 너희들이 품은 뜻을 말해 보겠느냐?” 그러자 자로가 말했다. “수레와 말과 옷과 갖옷을 벗들과 나누어 쓰다가 닳아 없어져도 섭섭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안연이 말했다. “잘하는 일을 떠벌이지 않고, 힘든 일을 드러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노인들은 편안히 모시고, 벗들은 믿음으로 대하며, 젊은이들은 품어 주고 싶다.” 顔淵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衣輕裘與朋友, 共敝之而無憾.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어떤 삶을 바라고 살아야 하는가. 앞에 올 자기 삶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리는 일이면서..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2] 불념구악(不念舊惡) _지나간 나쁜 일을 마음에 담지 않다 5-23 공자가 말했다. “백이와 숙제는 지나간 나쁜 일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남을 원망하는 일이 드물었다.” 子曰, 伯夷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 어떤 삶이 훌륭한 삶인가? 백이와 숙제는 원칙 있는 삶을 우리에게 환기한다. 이 대목에서 공자는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은 절개를 높이 사지 않았다. 그 대신에 공자는 용서할 줄 아는 사람, 즉 어떤 사람이 옛날에 저지른 잘못을 따지지 않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높이 샀다. 그리고 공자는 그들을 일컬어 “인을 구하여 인을 얻은 사람”이라고 추앙했다. 이로써 우리는 인한 삶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엿볼 수 있다. 섭적의 말처럼, 원망하는 마음은 보통 사람과 같았지만 스스로 즐거워하여 원망을 없앰으로써 보통 사람과 달라야 비로소 인으로..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0] 기우불가급야(其愚不可及也) _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 5-21 공자가 말했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를 드러내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음을 보였다. 그 지혜는 따를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 子曰, 甯武子,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은둔과 출사의 때를 잡는 일은 정말 어렵다. 공자는 위나라 대부 영유의 예를 들어 나아감과 물러섬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영유에 대한 공자의 품평은 세간의 상식을 파괴한다. 흔히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는 뒤로 물러서 몸을 지키고, 세상에 도가 바로 섰을 때에는 나아가 뜻을 펼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유는 반대로 행하면서 살았다. 그는 나라의 정치가 잘될 때에는 한 걸음 물러서서 스스로 공적을 자랑할 일을 하지 않았다. 흐르는 대로 두어도 세사가 이치에 맞을 것이기에 굳이..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8] 삼사이후행(三思而後行) _ 세 번 생각하고 행하다 5-20 계문자는 세 차례 생각한 후 행했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 이야기했다. “두 번이면 된다.” 季文子三思而後行. 子聞之, 曰, 再斯可矣. “사람이 항상 생각하지 않는 탓에 죄를 짓는다.” 하고 다산은 말했다. 어떤 일을 행하기에 앞서서 사태의 이치를 깊이 따져 물어 나아갈 길을 똑바로 하는 일은 당연하다. 문제는 생각을 지루하게 끌다가 행할 때를 놓칠 수도 있고, 생각만 하다가 해도 전혀 행하지 못할 때도 있으니, 생각하되 얼마만큼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두 번만 생각해도 충분하다는 공자의 말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한다. 옳은 일을 행할 때에는 일단 실천부터 하고 볼 일이지 생각에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막상 일을 당하면 실행하지도 않을 것이면서 깊이 생각하는 척만 한다고 비난하..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5] 삼성오신(三省吾身) _세 가지로 내 몸을 반성하다 1-4 증자가 말했다. “나는 매일 내 몸을 세 가지로써 반성한다. 남을 위해 일을 꾸미면서 충성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과 더불어 사귀면서 믿음직하지 않았는가? 전해 받은 바를 익히지 않았는가?”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왈(曾子曰)증자(曾子)는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 말년의 제자입니다. 공자보다 마흔여섯 살 어렸습니다. 이름은 삼(參)이고, 자는 자여(子輿)입니다. 아버지 증점(曾點)도 공자의 제자였습니다. 공자 사후에, 유약과 함께 내면적 성찰과 수신을 중요시하는 학파를 이끌었으며, 점차 영향력을 발휘해서 유가(儒家)의 틀을 완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리쩌허우는 증자를 “유학에 종교적 도덕을 도입한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논어의 명문장] 오소야천(吾少也賤, 나는 어렸을 때 천했기에) 태재(大宰)가 자공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성인(聖人)이신가? 어찌 그렇게 능한 일이 많으신가?”자공이 말했다. “진실로 하늘이 그분을 성인이 되게 하시고, 또 능한 일이 많도록 하셨습니다.”선생님께서 그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태재가 나를 아는구나! 나는 어렸을 때 천했던 탓에 비천한 일들에 능한 것이 많았다. 군자가 능한 일이 많으냐? 많지 않느니라.”大宰問於子貢曰, 夫子聖者與? 何其多能也.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 子聞之, 曰, 大宰知我乎! 吾少也賤, 故多能鄙事. 君子多乎哉? 不多也.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재주와 능력은 많을수록 좋다고 흔히 생각한다. 공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성인은 많은 일에 능한 것과 관련 없다고 믿었고, 군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