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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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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일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아마도 이상적인 출판사의 미래 모습은 저자가 제공하는 원자재인 원고를 다듬는 1차 산업, 책에 담긴 콘텐츠를 온라인 제품으로 재가공하는 2차 산업, 이를 다시 파생상품(만화, 게임, 영상자료)으로 연출하는 3차 산업이 한 지붕 아래 종합상사처럼 집합한 형태일 수도 있다. 출판사 편집자는 더 이상 잘 팔리는 필자 섭외와 오탈자 교정으로 전문성을 낭비하는 대신에, ‘열린 책’인 하이퍼텍스트의 건축가 또는 디자이너로 자신의 직업의 본질을 바꾸어야 한다. 마셜 맥루한이 창안한 고전적인 개념을 빌리자면, 책(문자)이 대변하는 ‘차가운 매체’와 영화(영상)가 상징하는 ‘뜨거운 매체’의 경계는 사라지고 ‘보이는 라디오’와 ‘읽어주는 오디오북’처럼 하이브리드 뉴 미디어가 지배하는 신세계에 우리는 이미 살고 있기 때문이..
어린이 인물 이야기(위인전)의 역사 인물 이야기는 흔히 위인전이라고 불리며 전집의 형태로 이어져 왔는데, 그 뿌리는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초 등에서 애국 계몽의 의지와 민족 독립의 열망을 담아 인물 이야기를 싣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인물 이야기는 을지문덕, 임경업, 곽재우, 김유신 같은 장군과 서화담, 정몽주, 이율곡 같은 학자의 비중이 높다. 이러한 인물 구성은 당시 의 특성과 연결하여 볼 때 무신의 용맹성과 문신의 지혜를 결합하여 조선 민족 고유의 자긍심을 찾아 주려는 까닭이 크다. 이후 20세기 초반 인물 이야기의 인물 구성은 상당수 그대로 이어져 현대 위인 전집에 영향을 미쳤으며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과도 상당히 일치한다. 1980년 이후 독재 정권을 통과하면서 인물 이야기에는 저항적 인물이 등장했으며 주로 ..
출판 전문지의 임무 ―《기획회의》 20주년에 부쳐 출판과 출판사는 다르다. 출판은 개별 출판사의 활동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넘어선다. 독자들 삶에 촉수를 뻗고 각각의 접점을 추구하는 개별 출판사의 활동과 달리, 출판은 ‘출판다움’을 성찰하고 조직하며 또 추구한다. 출판사의 일과 출판의 일은 긴밀히 이어져 있으되, 그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분명한 점은 출판이 출판사 너머에 있지 못할 때, 즉 출판사가 출판의 공적 성격에 대한 고민을 잃을 때 ‘출판의 위기’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창간 20주년을 맞는 《기획회의》는 이 엄연한 사실의 증거다. 출판전문지는 책이 아니라 출판을 다룰 때, 출판사가 아니라 출판에 복무할 때 비로소 제자리에 있을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임무를 지속해온 것은 이 잡지뿐이었다.책을 만드는 것은 개별 출판사의 몫이지..
‘동네서점×쏜살문고 프로젝트’ 이후, 민음사는 동네서점에서 어떤 일을 기획하고 있나 작년 여름에 진행했던 ‘동네서점×쏜살문고 프로젝트’ 이후, 민음사는 동네서점에서 어떤 일을 기획하고 하려고 할까? 첫째,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신구간 이벤트, 저자와의 만남, 에디션 제작 등과 같은 마케팅 활동들을 작은 서점에서도 꾸준하게 해나가면서 일종의 마케팅 루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중략) [독립서점만의] ‘히트상품’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잡을 수 있었다. 이는 동네서점에서 마케팅을 기획하려는 마케터에게나 동네서점 운영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서점인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둘째, 독자들이 동네서점을 찾는 이유인 ‘취향의 발견’과 ‘책을 활용한 다양한 경험’을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들을 서점들과 함께 고민하는 일이다. 더불어 서..
독립서점 슈뢰딩거의 생존비결 고양이책방 슈뢰딩거는 고양이에 대한 책만 판매하는 ‘주제 전문 서점’이다. 고양이책만으로 서점이 되느냐고? 물론 되고도 남는다.시급 500원으로 시작했지만 매출은 점점 늘고 있고 적자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지금은 애묘인들 사이에서 나름 알려졌고 재방문 손님도 늘고 있다. 다 애묘인 덕이고 고양이 덕이다. 내 서점의 시작과 생존 비결 모두 ‘애묘인’이라는 취향 공동체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가늘고도 질긴 거미줄 같은 연대를 타고 오는 손님들에게 취향을 파고 경험을 제공하고 그들과 애정 가득한 달뜬 마음을 공유한다. ― 김미정, 「독립서점 슈뢰딩거의 생존비결」, 《기획회의》 제458호 특집은 ‘독립서점, 먹고는 사십니까? 중에서 =======================확실한 주제의 선택과 기..
동네책방을 어떻게 분류할까 위트앤시니컬을 운영하는 유희경 시인은 동네책방의 개념을 ‘3세대’로 구분했다.베스트셀러부터 학습지와 문구까지 구비한, 마을마다 있는 전통적 개념의 동네책방을 편의상 1세대라 부르자.2000년대 새로 등장한,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가 없는 독립잡지, 독립서적을 취급하는 독립서점을 2세대로 구분하자.3세대는 ‘취미 활동의 공간’이 된 요즘의 동네책방이다. 온오프라인 대형서점과 똑같은 상품(책)으로 경쟁하지만, 신간도 종류별로 다 구비하지 않는다. 장소가 좁고 반품도 번거롭거나 어렵기 때문에 서점의 개성을 보여주는 몇 종에 구비 도서를 한정하면서 자연스럽게 ‘큐레이션 기능’이 작동한다. 강좌, 사인회, 낭독회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로 차별화를 꾀한다. 때로 책보다 ‘취미 활동’에 방점이 찍혀 책방인지 북카페..
《기획회의》 신간토크 제455호(2018년 1월 5일) 강양구와 함께하는 《기획회의》 신간토크. 최근 2주간 출간된 신간들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필자가 이야기한 부분만, 살짝 매만져서 올릴 예정. 김숨, 『너는 너로 살고 있니』(마음산책)“‘닿다’를 발음할 때면 혀끝에서 파도가 이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매 순간,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되는 순간부터 땅속에 묻혀 소멸하는 순간까지, 그 무엇과 닿으며 사는 게 아닐까요.”김숨의 소설에 임수진의 일러스트를 더한 서간체 그림소설 『너는 너로 살고 있니』가 마음산책에서 나왔습니다.무명의 여배우가 경주로 내려가 11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한 여자를 간호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변화를 담은 작품입니다.두 사람 모두 ‘아무도 아닌 자’입니다. 한쪽은 ‘살아서 죽은 자’이고, 다른 쪽은 ‘죽은 듯 사는 자..
큐레이션과 서점의 진화 《기획회의》 450호(2017.10.20.)의 이슈는 “스타 점원의 시대”입니다. 이 이슈에 대해서 쓴 ‘여는 글’을 조금 보충해서 아래에 옮겨 둡니다. 《기획회의》에는 ‘오늘날의 서점은 경험을 판다’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큐레이션과 서점의 진화 “단단한 모든 것은 공중으로 사라진다.” 카를 마르크스의 말이다. 자본은 해방이다. 자본은 세상의 모든 것을 화폐로 환산함으로써 혈연이나 계급이나 신분이나 토지와 같은 낡은 봉건 질서의 가치를 완전히 분해해 버린다. 사랑이나 우정과 같이 도무지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것까지 계산하려는 자본의 폐해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세상의 본질은 정지가 아니라 운동이고 변화이며, 변화를 반영하고 가속화하는 자본의 운동 앞에서 단단하고 고정된 것은 하나도 존재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