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도자의 ‘전략적 멍청함’… 어떻게 나라를 망쳤나
문화는 한 집단이 공유하는 믿음과 가치관, 태도와 관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인간 행동을 규정하는 가장 밑바탕에 놓인 힘으로, 개인의 습관이나 행동 양식, 공동체의 도덕과 거래 양태, 집단의 협력과 투쟁 등 온갖 움직임을 결정한다. 나쁜 문화에 사로잡히면 전쟁과 같은 결정적 행위를 수행할 때도 자칫 비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전쟁의 문화』(아르테, 2025)에서 존 다우어 MIT 명예교수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비교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전략적 멍청함’에 사로잡혀서 국가 위기와 파국적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다룬다. 저자는 일본 현대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깃든 인종적 편견을 비판하고, 미국 중심 세계관을 비판하는 수정주의 역사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다. 일본의 전후 재건 과정을 살핀 역작 『패배를 껴안고』(민음사, 2009)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2001년 9월11일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항공기를 납치해서 뉴욕과 워싱턴을 테러했을 때, 미국 언론과 지도자는 일제의 하와이 진주만 습격을 떠올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날 일기에 썼다. “오늘 21세기의 진주만 공격이 벌어졌다.” 역사상 최초로 본토를 공격당한 미국인들은 오욕감에 몸부림쳤다. 이들은 결국 인종주의와 기독교적 메시아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미국 특유의 전쟁 문화에 사로잡혀 ‘이라크 전쟁’이라는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다.
다우어에 따르면, 알카에다의 9・11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에 이르는 과정에서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빠져든 ‘전략적 멍청함’은 진주만 기습 공격을 감행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사고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히로히토 천황을 둘러싼 일본 군부가 기습 공격에 대한 미국의 대응력을 오판하고 승리를 당연시했듯, 조지 W. 부시 정부의 고위직 인사들은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에 대한 신앙 수준의 믿음, 대규모 전쟁이 불가피하고 정당하다는 신념에 젖어서 편견과 희망적 사고, 백일몽과 망상에 포획됐다.
미국을 이끄는 ‘세속의 사제들’은 수시로 신의 뜻을 들먹이면서 미국의 수행하는 전쟁을 ‘성전’에 비유하곤 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운 알카에다와 다르지 않았다. 저자는 이런 사고가 ‘믿음 기반의 정책’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이 정책에 따르면, 세상은 ‘나와 적’ ‘선과 악’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선한 자신의 역량은 과대평가하고, 악한 타인의 상황과 태도, 능력은 소홀히 취급하며, 우리 편 잘못은 감추면서 적의 위협은 과장하기 쉽다.
그 탓에 이들은 체리 피킹, 즉 보고 싶은 정보만 들여다보고 선별적 정보에만 주목하는 자기기만에 사로잡혔다. 집단 사고에 휩쓸려 숱한 반대 증거들을 무시한 채, 이라크에 있지도 않은 대량 살상 무기의 흔적을 조작해서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들은 지나친 비밀주의에 사로잡혀 관련 정보를 시민들에게 공유하지도 않았고, 합리적 선택을 위장한 비합리적 판단에 대한 책임성도 부족했으며, 누구나 생각할 법한 평범한 상식조차 무시했다. 그 결과, 미국은 승리 없는 전쟁,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정보 실패, 대량 살상, 과거에 대한 망각’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 특유의 전쟁 문화이기도 하다. 1941년에도, 2001년에도 미국 정보 실무자들은 사전에 적의 공격 징후를 포착했다. 일제와 알카에다가 주고받는 비밀 전문 속에서 “어마어마한 일이 곧 일어나리라”는 신호를 읽어내서 지휘부에 경고를 날렸다. 그러나 정부와 군부의 고위직들은 이 징후를 철저히 무시했다. 인종주의적 편견과 오만 탓이었다.
진주만 습격 때, 태평양 함대 제독이었던 에드워드 키멀은 경고를 받고도 이를 깡그리 무시했다. “난 그 쪼그만 노란 개자식들이 일본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그런 공격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60년 후 워싱턴 지도자들도 똑같이 생각했다. 그들은 “지저분한 수염에 헐렁한 외투를 걸친 채 아프간 사막과 산악지대의 모닥불에 둘러앉은 몇몇 아랍인 무리가 미국에 치명적 위협을 가할 수 있다”라고 믿지 않았다.
이후, 대응도 비슷했다. ‘충격과 공포’라는 이라크 전쟁의 작전명은 미국식 전술을 대변한다. 압도적 군사력을 행사해 충격(테러)을 일으켜서 적들의 전의를 꺾고, 융단 폭격을 통한 민간인 대량 살상으로 손쉬운 점령을 유도하는 전술은 제2차 세계대전 때나, 이라크 전쟁 때나 비슷했다. 미국 특유의 선민의식과 인종주의적 편견이 스며든 이러한 전술은 ‘민간인 대량 학살’이라는 반인류적 전쟁 문화를 부추겼다.
20세기 초 미국 군대는 필리핀 전쟁에서 최소한 20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민간인이 밀집한 일본과 독일의 주요 도시들에 소이탄을 퍼부었다. 1945년 3월 9일 미국 폭격기들이 도쿄 상공에 나타나 폭탄을 퍼부었다. 이 공격으로 도쿄 전체 건물의 4분의 1이 파괴되고,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했다. 시민들은 불길을 피해 도망치다가 운하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불 폭풍에 끓어오른 물은 끔찍하게도 이들을 삶아 죽였다. 넘치는 시체로 운하의 물길이 막힐 정도였다.
이것도 부족해 미군은 전략적인 중요성도 별로 없는 소도시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세계사에서 가장 끔찍한 폭탄”인 원자 폭탄을 떨어뜨렸다. 지휘부나 군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무조건 항복을 유도하기 위한 본보기로 시행된 원폭 공격은 사실상 최악의 민간인 학살이었다. 저자는 이를 ‘테러 폭격’이라고 부른다. 국제법을 아랑곳하지 않는 이런 전쟁 형태는 베트남 전쟁을 거쳐서 이라크 전쟁에서도 끝없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라는 미국식 전술을 사용해서 똑같은 보복에 나선 것이 바로 알카에다였다. 9・11 테러 당시, 이들은 항공기 납치를 사용해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공격해서 민간인들을 무차별 살해함으로써 미국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아울러, 저자는 1945년 이후 일본의 국가 건설과 재건 과정을 분석하면서 2003년 이라크 점령 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를 섬세하게 분석한다. 군대 해체, 공직자 숙청 등 일본에서 효과를 빚었던 미국 정책은 이라크에선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문화적 바탕이나 제도적 기반이 없는 나라에서 강제로 정권을 교체한 후, 국가 건설의 어려움은 무시하고 막연히 시장에 모든 걸 맡긴 시장중심주의 사고 탓이었다. 저자는 미국의 이러한 무능함과 무책임함에 대해서 “미국은 전쟁을 시작하는 법은 알지만, 끝내는 법은 몰랐다”라고 비판한다. 그 결과, 이라크는 대혼란에 빠져들어 테러가 만연한 불량 국가로 전락했다.
결국,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과 민주적・다원적 의사결정과정이다.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이 기존 법을 어기면서까지 집행 권한을 뻔뻔하게 확대하고 행사하는 데 열중하면 국가를 재앙으로 몰아넣는다. 오바마는 말했다. “백악관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위험 가운데 하나는 모두가 모든 것에 동의하고 토론과 이견이 사라지는 일입니다.”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시민들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는 언제든 전쟁의 문화에 빠져들 수 있다. 무리 행위와 집단 사고는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곳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