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출판에 대하여 2 - 학술서란 무엇인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이룬 학문적 성과를 책으로 펴내는 방법에 대해선 아직 정밀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없다. 그저 막연히 학술서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
학술서란 도대체 무엇일까?
주체의 자격을 기준으로 따져봐야, 교수나 학위 달고 엉터리 책을 써내는 사람도 많으니, 그게 학술서라고 할 수 없다. 동료 검토를 받는 학술지 등에서 꾸준히 연구 성과를 발표하면서 평판을 얻은 사람이 쓰면 학술서일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들뢰즈/가타리 같은 사람은 그런 걸 하지 않고, 학문적으로 대단한 책을 냈다. 니체는 대학을 떠나고 난 후 불후의 저작을 남겼다.
독자를 중심으로 정의하려 해도, 교수, 강사, 학생 등을 누구를 대상 삼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과 체제는 천차만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엔 올라 있지 않고, 우리말 샘에는 “학문의 방법이나 이론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책”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이 전문적인가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노관범 선생은 <한국사상사학의 성찰>이라는 글에서 광복 이후 한국 사상사 연구와 관련한 여러 책들을 개괄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상의 저술들은 개설서, 총서, 교양서, 교재, 입문서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아직 학문적으로 엄정한 통사적인 단행본 연구서가 출현하지는 못했다. 사상사의 정의, 목적, 방법에 관한 서설이 미비한 상태에 있고, 본론에서도 주요 주제를 병렬하는 선에서 그칠 뿐 체계화의 철학이 명확하지 않으며, 관습적으로 불교, 유교, 동학, 기독교 등의 범주를 반복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한국 사회는 아직 ‘한국사상사’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에 따르면, 한국 사상사를 다룬 많은 책 중에 아직 제대로 된 학술서는 한 권도 없는 셈이다. 학술서란 이름으로 그동안 나온 책은 모두 ‘학술서 미달’에 속한다.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느낌이긴 하다.
이 글엔 한 학자가 생각하는 학술서의 종류와 자격 요건이 희미하게 담겨 있다. 자격 요건은 ‘학문적 엄정성’이고, 종류는 개설서, 총서, 교양서, 교재, 입문서 등이다.
그런데 학문적 엄정성은 학술서만이 아니라, 교양서든, 개설서든, 입문서든 학술적 성과를 담은 모든 종류의 책에서 지켜야 할 일반 원칙이다. 만약 교양서나 입문서가 학술서와 다른 책이라면, 학술서는 학문적 엄정성 외에 다른 기준도 갖추어야 하는 듯하다.
노관범 선생은 다루는 주제에 대한 ‘정의, 목적, 방법에 관한 서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체계화의 철학, 독특하고 고유한 범주 등’을 학술서의 추가 기준으로 염두에 둔다. (나열식으로 이루어진 책은 학술서가 아닐까? 교양서는 저런 체제를 갖추면 안 될까?) 물론, 이는 아주 좁은 학문 영역의 이야기이므로 널리 학술서 일반에 적용하기엔 무리다.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학술적 성과를 담는 책의 분류 체계도 좀 필요하다. 노관범 선생의 분류는 다소 나이브해 보인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는 각 학문 분야별, 또는 세부 분야별로 입문(개설), 역사, 독본, 논점 등을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개별적 학술적 성과를 다룬 단행본을 두는 것으로 분류해 가르친다. 한국 문학 입문, 한국 문학사, 한국 문학 독본, 우리 시대 한국 문학의 [연구] 쟁점 정도를 기본서로 삼고, 그 위에 개별 학자들의 단행본 연구서를 쌓는 것이다. 물론, 단행본 내부에서도 더 다양한 분류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여전히 학술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남는다. 어떻게 쓰면 학문적 엄정성을 책의 구조로, 또는 편집 기술로 구현할 수 있을까? 어떤 학문의 성과를 입문서나 교양서로 쓸 때, 저자 또는 편집자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건 무엇일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