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 후한서] [황종택의新온고지신] 상경여빈(相敬如賓)
며칠 전 《세계일보》 황종택 칼럼에 부부애를 이야기하면서 『후한서』 속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상경여빈(相敬如賓), 즉 [부부가] 손님처럼 서로 공경한다는 뜻이다.
3000여년 전 주나라 건국의 설계자 태공망은 “아내의 예절은 반드시 그 말이 고와야 한다(婦人之禮 語必細)”고 강조했다. 결국 부부 서로 위해줘야만 화평을 이룰 수 있다. ‘가족이니까 이해해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면 파경을 맞을 수 있다. 그래서 ‘상경여빈(相敬如賓)’, 부부라도 손님 모시듯 서로 공경하라고 ‘후한서’는 가르치고 있잖은가. 태공망의 훈계는 계속된다. “어리석은 남편이 아내를 두려워하고, 어진 아내는 지아비를 공경한다(癡人畏婦 賢女敬夫).”
이 말은 『후한서』 권83 「일민 열전(逸民列傳)」 중 방공전(龐公傳)에 나온다. 흔히 부부 사이에도 서로 몸가짐을 조심하라고 권고하는 말로 나온다고 써 왔지만, 사실 『후한서』 원문에는 숨어 살면서 절개를 지킨 방공과 그 아내의 태도를 사실로서 진술할 뿐이다. 아마 후대에 성어(成語)로서 쓰이면서 그런 용법이 생긴 듯하다.
방공은 후한 말 형주 지역에서 지조 높은 선비로서 이름이 높았으므로, 형주자사 유표(劉表)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응하지 않자 유표가 그를 직접 찾아가 문답을 나누었는데, 출사를 권유하고 거절하는 그 문답이 격조가 있어서 후대에 널리 알려졌다. 아래에 방공전 전체를 옮겨서 소개한다.
방공龐公은 남군南郡 양양현襄陽縣 사람이다. 현산峴山 남쪽에 살았는데,(각주 1) 일찍이 [양양]성 안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그와 아내는 서로 공경하기를 손님을 대하듯 했다. 형주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몇 차례나 불러들이려 했으나 [방공이] 굽히지 않았으므로 이에 찾아가서 그를 만났다.
유표가 일러 말했다.
“[세상에 나서지 않는다면] 무릇 일신은 보전하겠지만, 천하는 누가 보전하겠습니까?”
방공이 웃으면서 답했다.
“고니와 큰기러기는 높은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 저녁이 되면 그곳에서 묵습니다. 또 자라와 악어는 깊은 못 아래 구멍 속에서 살면서 밤이면 그곳에서 잠듭니다. 무릇 [사람이] 나아가고 머무르며 행하고 그치는 곳이 곧 사람의 거처입니다. 또한 각자 머물러 쉴 곳이 있으면 될 뿐이지 천하를 보전하려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고는 밭두렁에 올라 밭 갈기를 멈췄는데, 그 처자가 앞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유표가 그들을 가리키면서 물어 말했다.
“선생이 고생스럽게 밭을 갈고 살면서도 관직에 나서는 것을 옳게 여기지 않으니 후세에 자손들에게 무엇을 물려주시겠습니까?”(각주 2)
방공이 답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위험함을 물려주지만, 지금 저만이 홀로 편안함을 물려줄 것이니, 비록 물려주는 바가 같지는 않겠지만 물려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겠습니까.”
이에 유표가 탄식하면서 떠나갔다.
나중에 그 처자를 이끌고 녹문산鹿門山(각주 3)에 올라서 약초를 캐고 살면서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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