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20일(월)
주말에 이상한 모양으로 흐트러져서 글을 쓰지 못했다. 금요일에 마신 술이 주말 내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읽던 책을 마저 읽었고, 쌓아 둔 자잘한 자료를 섭렵했으며, 새로운 책을 집어 들었다. 또 취미로 하는 번역을 틈날 때마다 했다. 모아서 정리한다.
(1)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 중에서
― 지나치게 똑똑한 체하면 바보가 될 뿐이다. (366쪽)
― 포도주 속에는 진실이 거의 없다. 아니면 그 반대로 포도주 속에는 거짓만이 있다. (366쪽) 술은 늘 거짓말을 한다. 삶을 파괴한다. 술과 결별하지 않는 한 노년을 행복으로써 누리기 어려우리라.
― 한 마디 말, 하나의 몸짓이 때로는 온 도시 사람들의 수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제게 가르쳐 주었으니까요. (382쪽)
― 사람들은 실제로는 하지도 못하고 원하기만 하면서 인생의 4분의 3을 보내는 법이다. (391쪽)
― 하늘을 응시하고 별을 향해 시선을 들어 올리라고 명령하면서/ 신은 인간의 몸 제일 위쪽에 얼굴을 두었다. (오비디우스) (392쪽) 이 시인의 시는 읽을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한다. 얼굴의 존재론을 이처럼 생생하게 묘파한 구절을 어디서 또 만날 수 있단 말인가.
― 수도에서 하인 제복을 입으려고 시골을 떠나 직업 중에서도 가장 유용하고 가장 고귀한 농사일로 되돌아가기보다는 차라리 거리에서 빵을 구걸하거나 배고픔으로 죽기를 바라는 다른 수많은 비겁한 건달들의 상징이죠. (393쪽) 이 낭만주의는 디드로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21세기에 오히려 그 진리값이 높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급자족은 아마도 미래의 모든 이들의 기본 생활 패턴이 될 것이다.
― 사람들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만 관심을 둘 수 있다. (417쪽)
(2) 리쩌허우, 『중국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2013) 중에서
― 문예부흥은 혁명이 아니에요. 그것은 문화 전체에 인문화라는 새로운 국면을 가져오는 겁니다. 즉 인간이 어떻게 기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좀 더 큰 자유를 획득할 것인가 하는 거죠. (294~295쪽) 문화의 인문화는 깊숙하게 탐구하고픈 주제이다. 테제로 삼아 두자.
― 정치 민주화가 오늘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경제적 기초가 변하지 않는다면, 하룻밤 사이에 전제로 되돌아갈 수 있거든요. (300쪽)
― 한국과 타이완에서 경제가 신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절대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중국이 길을 닦으려면, 정부가 결정한 것을 다른 이들이 모두 복종해야 해요. 절대 권위는 초기에 경제가 신속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지요. 때로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도 불가피합니다. 모든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중략) 역사는 비극 속에서 전진합니다. 관건은 이 비극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지요. (300~301쪽) 오늘날, 이를 역사적 성취인 동시에 과오로 받아들이는 세계관이 정말로 필요할까? 만약 이 세계관을 마련할 수 있다면, 우리는 현대사의 이 천박한 이항대립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의사-권위주의적 정치 국면에서 이러한 주장은,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자살에 가깝다. 토론이 불가한 영토에 속한다. 이 부분을 신속하게 탈영토화해야 한다.
― 무엇을 비극이라고 할까요? 악인이 선인을 때려죽이는 건 비극이라고 할 수 없어요. 선인이 선인을 때려죽이는 것이야말로 비극이죠. (301쪽) 비극에 대한 통절한 인식이다. 이를 이해하는 정치인도, 문화인도 한국에는 아주 드물다. 보수는 설득하지 못하고 진보는 듣지 않는다. 보수는 진보의 존재를 비극이라 하고, 진보는 보수의 존재를 비극이라 한다. 이런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탈출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국가도, 시민사회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3) 앤 스콧, 『오래된 빛 ―― 나만의 서점』(강경이 옮김, 알마, 2013) 중에서
― 사람들은 책은 정원에 들고 나가서 읽거나 마차를 타고 가는 길에 소일거리로 읽으면서 일상적인 독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혼자 책을 읽는 즐거움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필사본은 들고 다니기가 조심스러웠지만 제본된 책은 안전했다. 이제 스코틀랜드의 시는 사람들의 정신에도, 테이블에도 안전하게 배달되었다. (27~28쪽)
― 직접적으로 사회를 비평하는 문학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문학비평도 하나의 장르로, 그리고 명성을 얻는 통로로 자리를 잡았다. (43쪽) 조금 단순하게 말하면, 이는 어쩌면 오늘날의 문학비평이 왜 그렇게 사람들 관심사에서 멀어졌는가를 말해 주는지도 모른다. 문학비평이 하나의 장르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기원에 따르면, 반드시 사회 비평이어야 한다. 사회 비평적 작품의 후퇴, 그에 따른 비평의 문학-내화가, 결과적으로 비평의 전면적 영향 상실을 가져온 것이다.
― 나란히 똑바로 꽂힌 책들은 조화롭게 정돈된 삶이요, 알파벳으로 포장된 삶의 선택들이다. 책이란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우리의 삶이다. (54쪽)
― 깊은 고민 끝에 구두법이 정확하고 긴 문장들로 빚어낸, 여러 제목의 설교야말로 개혁교회의 토대였다. (59쪽)
― 게일어에는 ‘시’를 뜻하는 단어가 스물여덟 개나 있으니까 어떤 시라도, 세상 어디에서 쓴 시라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61쪽) 그렇다면 게일어를 쓰는 나라는 시인들의 천국이 아닐까? 언제가 그 스물여덟 단어를 모조리 찾아서 나열해 두고 싶다.
― 우리의 모든 탐색의 끝은/ 우리가 시작했던 곳에 도달하는 것/ 그리고 그곳을 처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T. S. 엘리엇) (64쪽)
― 시란 반짝이게 다듬고 부활시켜야 할, 저 깊은 곳에서 빛을 발하는 원석이다. (64쪽)
― 시란 곧 꿈이자 칼자루이다. 시어가 소용돌이치듯 살아 있는 형상을 그려내고 이미지를 조각한다. 그 속에서 형체와 광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장미와 불꽃이 하나가 된다. (64쪽)
― 벤저민 몰의 놀라운 혜안에 따르면, 아이들은 단지 읽는 법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읽는 법을 배워야 했다. 몰은 책은 곧 교본이라는 해묵은 생각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문학이 삶의 무한한 자산임을 알렸다. 책은 더 이상 도덕이나 사회의 관습적 잣대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독자가 새로운 자아를 찾는 장이 되어야 했다. (74쪽)
― 성배 운동은 주술적인 성배 신화를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는 기적으로 변형시켰다. (104쪽) 문학은 이와 비슷하게 변화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절망에 빠진 정신을 희망에 가득 찬 영혼으로, 테러와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를 사랑과 평화의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언어 위에 인류의 기억들을 새김으로써 언어를 세계의 오염으로부터 구원한다.
― 그곳의 밝은 음악과 대화, 그림, 책 읽기에 좋은 포근하고 조용한 공간 속에서 나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나의 고질적인 죄책감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06쪽)
― 북스오브원더는 살아가다가 어떤 질문에 봉착했을 때 찾아가면 좋을 서점이다. 무엇이 현실이지? 혹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이런 질문. (112쪽)
― “허락하는 한 다양한 모습으로 태어나고 사는 것은 축복이다.”(프랭크 오하라) (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