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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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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의 배신자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노수경 옮김, 사계절, 2018)의 북 콘서트가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렸다. 이 책은 ‘학력에서 경력으로’ 일자리 규칙이 옮겨가는 시대를 맞이하여 개인이 일터에서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 보람 있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조지프 슘페터, 피터 드러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떠한 형태의 전체주의에도 반대한, 자유주의 경제의 철저한 옹호자들이 답이다. 그런데 이들이 자유에 대한 이토록 강한 갈망을 품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여기에 칼 포퍼나 조지 소로스를 추가하면 좀 더 완전한 목록이 될 것이다.콘서트 사회를 보면서 필자가, ‘인문의 힘’을 길러 주는 고전으로 피터 드러커의 경영서를 추천한 까닭을 물었더..
비회원 구매·대량 납품 도서, 베스트셀러 집계서 뺀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미국 아마존은 사재기뿐 아니라 출판사의 가짜 리뷰까지 검찰에 고발하는 등 출판계 공정 질서를 위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사재기를 노리는 이들의 수단 중 하나를 차단한다는 측면에서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전문입니다. ----------------------------------- 출판계, 3월께 사재기 근절 자율협약 추진 대형서점 온라인사이트서 비회원으로 구매할 경우 인증절차 거친 책만 포함 [ 심성미 기자 ] 온라인에서 비회원으로 구매자의 ‘본인 인증’ 절차 없이 구입한 책은 서점의 베스트셀러 판매 집계에서 제외된다. 서점이 기업이나 단체에 대량으로 납품한 책도 베스트셀러 판매 실적에 포함되지 않는다. 출판사가 온라인에서 비회원으로 특정 도서를 대량..
낯선 사랑, 낯선 결혼, 낯선 이별 - 서유미의 『홀딩, 턴』(위즈덤하우스)를 읽다 “무엇보다도 사랑과 결혼이 겹치는 지점이 불편했다. 영진과 잘 지낼 때도 생활 속에서는 적당한 거리감 확보가 간절했다. 연애할 때는 밀착되는 게 좋았지만 그게 매일 이어지는 건 버거웠다. 지원이 꿈꾸는 건 오래 연애하는 상태에 가까웠다.”어제 오후, 서유미의 『홀딩, 턴』(위즈덤하우스, 2018)을 읽었다. 사랑과 이별의 과정이 아니라 내면을 더듬어 가는 섬세하고 느릿느릿한 이별 이야기다. 지원과 영진이 스윙댄스 동아리에서 만나 결혼하고 사소한 이유로 이혼에 이르는 다섯 해 동안의 삶을 그려 낸다. 둘의 이별은 불행하되 추접하지 않다. 침착하고 산뜻해서 신선하다.두 사람의 사랑은 ‘불행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탄하지만, ‘쿨의 윤리’를 좇아 눈에 띄는, 아무 상처도 없이 갈라선다. 스무 해 전인 19..
조선 시대 양반부부, 낮엔 대화하지 않았다 《문화일보》에 두 주에 한 번 쓰는 서평입니다. 이번에는 채백의 『조선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컬처룩, 2018)을 다루었습니다. 조선후기와 개화기의 소설을 분석하여,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못한 일반 민중들의 소통 방법을 복원하려 한 흥미로운 학술서입니다. 아래에 옮겨 둡니다. 조선시대 양반 부부, 낮엔 대화하지 않았다채백, 『조선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컬처룩, 2018) 역사에는 항상 힘이 작용한다.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이가 드물었던 시대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쉬웠다. 책을 불사르고 사람을 묻는 한이 있어도, 권력자들은 ‘용비어천의 노래’를 기어이 남기고 싶어 했다. 패자는 승자의 상대로나마 기록되었지만, 일반 민중들은 역사에 한 줄을 얻기 어려웠다. 로버트 냅의 말처럼 그들은 ‘보이..
일요일 노이로제 한 주에 한 번 쓰는 《매일경제》 칼럼. 이번 주에는 주말병인 ‘일요일 노이로제’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조금 보충해서 아래에 옮겨 둡니다. 일요일 노이로제 사람들은 흔히 고요함과 지루함을 혼동한다. 고요함은 바깥의 소리가 침묵하는 상태다. 내면의 귀가 일어서 마음의 소리를 좇는 자리다. 생활의 분주함이 가져오는 생각의 엉킨 실을 끊고 온전히 자아에 집중함으로써, 심신에 거름을 붓는 휴식의 시간이다. 고요 안에 깊이 잠길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나’와 마주서서 이 삶을 새롭힐 수 있다.지루함은 일이 조용한 상태다. 한없이 몰려들던 일들이 어느새 멈추어 방심한 자리다.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 좋을……. 그런데 문득, 물음이 몰려든다.‘지금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생각..
사도 바울은 천막 노동자, 평등한 공동체를 꿈꾸었다 카렌 암스트롱,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 정호영 옮김(훗, 2017)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방식을 버리고 평범한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살아감으로써, 바울은 예수가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졌던 것과 비슷하게 “자기 비움”, 즉 매일의 케노시스(kenosis)를 실천했던 것이다.(77쪽) 전독(全讀)하는 저자 중 한 사람이 카렌 암스트롱. 새벽에 읽어나 미루어 두었던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정호영 옮김, 훗, 2017)를 완독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 지 서른 해 가까이 되었는데도, 훈련된 나의 기독교적 영성은 별로 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더 강해지는 듯하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성경 구절들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
《기획회의》 신간토크 제455호(2018년 1월 5일) 강양구와 함께하는 《기획회의》 신간토크. 최근 2주간 출간된 신간들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필자가 이야기한 부분만, 살짝 매만져서 올릴 예정. 김숨, 『너는 너로 살고 있니』(마음산책)“‘닿다’를 발음할 때면 혀끝에서 파도가 이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매 순간,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되는 순간부터 땅속에 묻혀 소멸하는 순간까지, 그 무엇과 닿으며 사는 게 아닐까요.”김숨의 소설에 임수진의 일러스트를 더한 서간체 그림소설 『너는 너로 살고 있니』가 마음산책에서 나왔습니다.무명의 여배우가 경주로 내려가 11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한 여자를 간호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변화를 담은 작품입니다.두 사람 모두 ‘아무도 아닌 자’입니다. 한쪽은 ‘살아서 죽은 자’이고, 다른 쪽은 ‘죽은 듯 사는 자..
어느새, ‘회사 인간’ 한 달에 한 번, 《중앙선데이》에 쓰는 칼럼입니다. 카프카의 『변신』을 통해 회사에 길들여진 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느새, ‘회사 인간’ 연초에 휴가를 갔다. 새벽 5시, 여명이 있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뜨인다. 느긋한 게으름을 피우자고 마음먹은 것도 별무소용이다. 신체가 제멋대로 움직인다. 어둠 속에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작은 등을 켜고 가져간 책을 읽는다. 가족들 숨소리가 고르다.회사를 나왔을 때도 한참 그랬다. 몸을 추스르려 동생이 사는 시골마을로 내려갔다. 굳이 출근할 필요가 없는데도, 아침 8시면 몸이 지하철에 출렁이는 것 같고, 12시에는 어김없이 배가 고프고, 오후 4시에는 무조건 지루하고, 7시가 되면 술 벌레가 창자를 건드렸다. 어쩔 수 없음을 알지만, 나는 여유와 한적을..